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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

<변호인> 천만관객 노무현 전 대통령 송강호

by 오! 지니 2023. 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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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18일 영화상영

<변호인>의 감독 '양우석'

양우석 감독은 1969년 서울 태생으로 우연히 본 '흑인 오페라'란 영화를 보면서 빈민층 청년들의 이야기에 매료되어 영화광이 되었다고 한다. 고려대학교 철학과 출신으로 철학만이 아니라 영문학과 역사에도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2009년에는 취미로 웹툰작가 생활을 시작했고 '로봇 태권브이'의 속편 '브이',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면' '스틸레인' 등을 연재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야기를 해보겠다는 꿈이 있었기에 웹툰용 시나리오로 '변호인'을 완성하고 시나리오를 영화화하고 감독까지 맡게 된다. 흥행을 기대하지 않았던 영화'변호인'은 2013년 개봉한 뒤 한국 영화 역사상 아홉 번째로 천만 영화의 대기록을 세우고 2014년 청룡영화제 최우수작품상 백상예술대상을 수상했으며 최초로 천만 영화로 데뷔한 감독이 되었다.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부터 영화 <변호인>까지 그의 극우적 성향을 잘 볼 수 있다. 양우석 감독의 영화로는 <강철비/2013> <강철비 2_정상회담/2020>가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실화

노무현 전대통령은 대한민국 16대(2003~2008) 대통령이다. 고졸학력으로 1975년 제17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대전지방법원 판사로 임용되었으나 7개월 만에 사임하고 1978년 부산에서 변호사로 개업하여 1981년 <부림사건> 변론을 맡으면서 인권변호사로 활동을 시작한다. 영화 <변호인>은 이<부림사건>을 모티브로 하여 제작되었다. 부림사건은 부산의 학림사건을 줄임말로 1981년 9월, 군부 정권 초기에 통치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독서모임을 하던 학생과 교사 22명을 영장 없이 체포하고 불범 감금, 고문까지 해 기소한 사건이었다. 이 사건으로 돈 잘 벌던 변호사는 인권 변호사의 길로 들어서고 변호사 활동 경력을 인상 깊게 본 김영삼 전 대통령의 제의로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정계에 입문하게 된다. 초선의원임에도 전직대통령, 재별 회장 앞에서 당당하게 질의하는 모습은 그를 청문회 스타로 만들었고 이후 대한민국 최초로 정치인 팬클럽 <노사모>가 탄생하기도 했다. 역대 대통령 중 최초로 퇴임 후 자신의 고향 봉화마을로 귀향하였으나 <박연차 게이트> 등 친인척 비리로 수사를 받다가 2009년 5월 23일 스스로 투신하여 62세로 생을 마감한다. 영화는 인권변호사로 활동했던 노무현의 소신 있는 젊은 변호사 시절의 모습을 송강호 배우를 통해 완벽하게 재현해 냈다.

 

<변호인>을 통해서 들여다본 가슴 아픈 역사 

상고 출신의 흙수저 변호사 송우석 <송강호>은 오직 피나는 노력으로 판사가 되었으나 가난의 서글픔과 서러움에 부자가 되겠다는 결심을 하고 변호사 개업을 한다. 그 당시 변호사들은 기피하던 세금자문, 부동산 등기 등을 대행하며 부산에서 이름을 날리게 되고 이를 통해 큰돈을 벌게 되고 대기업 스카우트 제의까지 받으며 탄탄대로를 걷게 된다. 송우석은 그동안 돈 때문에 하지 못했던 취미생활을 마음껏 하고 젊은 시절 막노동을 하며 꿈꾸었던 그 아파트로 이사하여 가족들과 함께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송우석을 찾아온 선배 김상필이 부탁한 사건의 변론을 고심하게 되고, 이 사건이 군부 정권의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조작된 사건이며 그 희생양이 젊은 시절 매일 같이 찾던 식당의 아들 진우 <임시완> 임을 알게 되고 사건을 맡기로 결정한다. 군부 정권 세력은 힘든 환경 속에서도 엄마를 도와 식당일을 하고 성실하게 공부하며 미래를 꿈꾸던 순진한 학생 진우를 북한과 내통하는 '빨갱이'로 몰아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고문으로 망가뜨리고 거짓 진술서를 작성하게까지 하며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한다. 어쩌면 송우석은 진우를 통해 어떻게든 가난을 벗어나려 발버둥 치던 과거 자신의 어린 시절을, 현재 권력의 힘으로 위에 서고 싶은 참을 수없는 자신의 모습을 보았는지도 모르겠다. 최선을 다해 변론하며 승소를 확신했던 그때 차동영 <곽도원>이 나타나 승소에 유리했던 증언을 삭제 요청하며 재판은 승산 없이 허무하게 끝나버린다. 이렇게 세상은 변함없이 시간은 흘러가고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발생하였고 송우석과 김상필은 시민들과 함께 시위행진에 참여하였고 송우석은 시민 선동 혐의로 구속되게 된다. 이 사건은 김상필이 제1변호사를 자청하였고 재판당시 부산의 142명의 변호사 중 99명이 법정에 참석하였다고 한다.

지금 우리의 모습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흙수저 인생은 시작부터 불공정했고 대통령이 된 후에는 공정과 상식을 실현하려 노력하며 어제와는 다른 오늘을 꿈꾸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느꼈던 것은 정치판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정치라는 것은 잘은 몰라도 거대 권력 앞에 늘 약자로 무릎 끓어야 하고 가슴 아픈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참으로 고단한 과거이고 현재이다. 공정을 위해 희생했던 과거 은인들의 용기를 기억하며 가슴에 새겨본다. 그런 희생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금 공정과 상식은 그림자로라도 남아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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